이안 러시(Ian Rush), 리버풀의 최고의 골잡이! 더욱 더 RUSH!
이안 러시(Ian Rush), 리버풀의 최고의 골잡이! 더욱 더 RUSH!
The Ghost.
어느새 눈을 돌리면 수비수 뒤로 향해 가고 있다고 해서 생기게 된 그의 별명.
1980년 18세의 나이로 리버풀에 입단한 이안 러시는 리버풀의 최고의 골잡이이다.
오죽하면 아직도 리버풀에서 깨지지 않는 "346골"이라는 어마어마한 최다 득점자의 주인공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사실 ‘특징’이 없다고 해도 무방한 선수였다.
천재적인 플레이가 나온 것도 아니고, 폭발적인 스피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타고난 골냄새를 맡았던 것도 아니었다.
아니 어떻게 저런 공격수가 저렇게 골을 많이 넣지? 싶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해야 골을 넣을 수 있는 지를 아는 선수"였다.
주행속도를 조절하는 능력, 페이스를 좌우하는 믿기 어려운 능력과 치명적인 마무리.
위치선정의 황제라고 불리던 인자기와는 또 다른
정확히 수비와의 간격을 맞춰서 있다가 어느새 수비수 뒤로 가서 골을 넣는
러시는 정말 말 그대로 고스트였다.
그는 첫 풀타임 시즌 1980-81 시즌 49경기에서 30골을 뽑았다.
18세의 나이라는 어린 아이와도 같은 그였지만, 그의 발은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21살이 되었던 1983-84년, 리그 32골과 모든 대회에서 총 47골을 터뜨리는 활약을 보여줬다.
그 시즌 리버풀은 리그와 리그컵, 그리고 유러피언컵의 우승을 이루게 되었던 그야 말로
‘붉은 제국’의 시대를 살았고 그 선봉장으로 있었던 이안 러시였다.
그러나 1985년 헤이젤 참사와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겪게 되었고,
리그 우승 또한 에버튼에게 내어주게 되면서 잠시 주춤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안 러시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6시즌 동안 207골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그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바로 세리에A를 향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그를 선택한 팀은 최고의 팀이었던
유벤투스였다. 그렇게 이안 러시는 새로운 이탈리아 무대를 향해 도전을 내밀었지만,
그 당시 세리에는 공격수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던 시절이었고, 안타깝게 세리에A에서 러시는 적응하지 못했고
그렇게 한 시즌만에 다시 리버풀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부활의 날갯짓을 펼쳤고,
결과적으로는 다시금 화려한 도약을 하게 되었다.
당시 1988-89 시즌 에버튼과의 FA 결승전에서 교체로 투입된 러시가 연장전에서만 2골을 터뜨려
3-2로 승리하게 되었던 경기는 정말 유명하다.
이러한 이안 러시를 더욱 ‘rush rush’ 하게 만든? 그 기동력은 바로 "킹 케니"
'케니 달글리시'와의 호흡이었다.
지난 시간에도 다뤘지만, 이안 러시와 케니의 호흡은 정말 이로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플레이였다.
2000년대를 호령한 제라드와 토레스의 일명 ‘제-토라인’처럼 케니와 러시의 라인은 잉글랜드를 박살시키고
그들의 머리에는 ‘왕관’이 쓰여질 수밖에 없는 듀오였다.
하지만 세월이 점점 지나면서 그도 체력적인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는 끝까지 달려갔다.
그는 꾸준히, 성실하게 리버풀의 전방을 책임 지었고, 신성이라고 불리우는 또 다른 공격수
‘로비 파울러’와의 경쟁 속에서도 러시는 전혀 밀리지 않았고, 그는 그렇게 총 14년 이라는 시간의 리버풀과의 동행을
마무리 하게 되고 결국 1995-96 시즌은 끝으로 리버풀과 이별하게 되었다.
이안 러시는 리그 우승을 다섯 번 경험하고, 빅 이어도 2번을 들었다. 3번의 FA컵 우승, 5번의 리그컵 우승 등
총 660경기, 346골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그는 화려한 리버풀 커리어를 마무리 하게 되었다.
당대 최고의 명장이라고 불리운 '밥 페이즐리'라는 위대한 감독의 지도 아래
전방의 '고스트'로 활약했던 이안 러시!
세월이 흘러 어느덧 검고 진한 모든 머리는 다 희어졌고,
시간은 흘러 흘러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있지만,
전설의 골잡이, 리버풀의 9번.
나는 오늘 다시 한 번 지금도 그를 LEGEND라고 부르고 싶다.
All you needs is "RUSH!"
You Will Never Walk Alone.